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해군 특수전전단 (문단 편집) == 역사 == || '''{{{#fff 연도}}}''' || '''{{{#fff 부대 명칭}}}''' || || [[1955년]] [[11월 9일]] || [[해군작전사령부|한국함대]] 제2전단 해안대 '''수중파괴대''' || || [[1981년]] || 한국함대 제2전단 '''특수공작대''' || || [[1983년]] [[1월 1일]] || 한국함대 제2전단 '''제25특수전전대''' || || [[1986년]] [[2월 1일]] || [[해군작전사령부|작전사령부]] [[제5성분전단]] '''제56특수전전대''' || || [[2000년]] [[1월 1일]] || 작전사령부 '''특수전여단''' || || [[2007년]] [[12월 21일]] || 작전사령부 '''특수전전단''' || >'''Going Gets Tough, UDT Men Get Going'''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FB_IMG_1573620248602.jpg|width=100%]]}}} || >'''아무리 힘들어도 UDT는 한다!''' >한국 UDT 생도의 미국 유학을 보도한 미국 신문의 헤드라인. >미국 UDT 훈련인 B-6 과정을 받는 한국 UDT 생도의 모습이 담긴 1955년의 신문 기사이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FB_IMG_1573010550008.jpg|width=100%]]}}} || || [[http://www.daejonilbo.com/news/newsitem.asp?pk_no=1358586|UDT 창설배경]] || 6·25 사변을 거치면서 미군으로부터 전달된 특수작전부대 편성과 운영은 그대로 해군특전부대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1952년 2월, 미 정찰정보대(RIU·Reconnaissance Intelligence Unit)가 해체되면서 한국 해군에 정찰정보대의 창설을 기획했다. 이에 한국 함대정보국(NID·Naval Intelligence District)은 1952년 11월, 미 해군특수전부대 UDT 양성 교육과정인 B-6 과정에 김성권 중위를 유학시켰다. 당시 UDT 창설 목적은 '''북한에 대한 요인암살 및 첩보수집'''이었다. 김중위에 이어 1953년과 1954년 미 해군 B-6과정에 유학한 11명으로 대한민국 해군 UDT가 탄생됐다. 1954년 5월 17일 미국 UDT의 편제와 동일하게 내륙정찰조, 해안정찰조, 수중정찰조, 폭파조의 4개 작전대로 수중파괴대를 구성했으며,[* 작전기밀 제58호] 이후 같은 해 6월 23일 한국함대 제2전단 제21전대(상륙전대) 예하 해안대(상륙지원대)에 수중파괴대(UDT)를 편성했다.[* 원래 장교 13명, 부사관 16명, 병 103명 총 132명으로 편성되었으나, 실제로는 지휘부 21명, 각 소대 23명 씩 4개 소대로 총 113명으로 편성되었다. 다만, 1981년 특수공작대로 개칭되기 전까지 단 한번도 완편된 적은 없다.] 1955년 5월 25일 한국함대 B-6 교육과정이 발족되었고 같은 해 11월 9일 제 1기 과정 26명을 수료시켜 대한민국 해군 UDT가 창설되었다.[* 해본기밀 제1762호, 단기 4287년, 서기 1954년 6월 19일]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1412150_991814634192502_1946821546812272151_o.jpg|width=100%]]}}} || || 1955년 미국 UDT 교육과정 [[https://m.blog.naver.com/commander44/220623368985|수료사진]] || 당시 해군 지휘부에서는 한국 UDT가 창설되기 전 제2차 세계대전 및 한국전쟁 시 미군의 전쟁수행 핵심전략인 상륙작전을 실시하기 위해 '''적 해안정찰, 첩보획득, 해상정찰, 내륙기습폭파공작, 암살, 해안장애물 제거, 기뢰탐색 및 소해, 유격대 및 요인호송, 특공대 철수지원 및 수중파괴 임무'''[* UDT/SEAL의 창설 당시 명칭이 수중파괴대였다는 점을 근거로 UDT는 해군의 공병부대라는 잘못된 정보가 퍼지기도 했으나 한국 UDT는 창설 기획부터 미국 UDT를 모델로 하였고 미국 UDT 교육과정을 수료한 인원들로 창설되었기 때문에 창설 당시부터 공병부대와는 다른 성격의 부대였다. 실제로도 당시 한국 UDT는 부대차원에서는 북파공작을 위한 요원 양성을 담당했고 UDT요원은 북파공작을 실행했던 만큼 이러한 주장들은 명백히 사실이 아니다. 즉 처음부터 해군 특수전을 위한 부대였다. 현재는 스쿠버가 대중화 되어있지만 당시엔 스쿠버는 군대가 아니면 어디서 배울 수도 없는 초고도의 기술 그 자체였다.]를 수행하며 큰 활약을 보인 미 해군 UDT를 모체로 하여 창설을 준비하였다. 이에 따라 미 해군 UDT의 선진 교육을 통한 작전개념 정립과 차기 국내에서 배출해야 될 UDT 요원들의 교관 확보와 더불어 임무 수행에 필요한 장비 획득이 우선시 되어 1954년과 1955년에 해군 내 국가관과 군인정신이 투철하고 체력이 우수한 대원을 공개 모집, 미 8군 주도의 영어시험을 거쳐 최종적으로 장교 3명과 사병 4명 총 7명을 최종 선발하기에 이르렀다. 해군은 선발된 7명을 두 차례로 나누어 미 해군 UDT 과정(B-6)에 유학을 보냈고 장인표 대위 등 7명 전원이 소정의 미 해군 UDT 과정(B-6)을 수료하여 한국 해군 UDT가 탄생되었다. 이들은 미 해군 UDT 교육과정에서 습득한 전문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UDT 창설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고, 제2전단 예하 함정교육대(STU)에서 UDT 모집을 공고하였다. 지원 자격에 별다른 조건은 없었고, 직별 상관 없이 신체 건강한 해군 장병이면 지원이 가능했다. 또한, 수료 후 3급 [[군무원|문관]]에 준하는 특별대우와 미국 유학기회 보장, 파격적인 주ㆍ부식을 제공한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전후 복구에 여념이 없던 시절이라 해군 내에서는 보급품이 제대로 조달되지 못했고 식사 및 의복 지원도 여의치 않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시 해군에서 제시한 조건은 해군 내에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모집공고 후 300여명의 사병들이 지원하여 지원자들은 팔굽혀펴기, 달리기 등 1차 체력검정을 실시하고 다음날 해안대 방파제 앞 해상에서 2차로 수영 및 잠영 테스트를 거쳐 최종 80명이 선발되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THE UDT.jpg|width=100%]]}}} || || UDT 창설 요원인 [[http://www.imhc.mil.kr/user/indexSub.action?codyMenuSeq=70508&siteId=imhc&menuUIType=sub|장인표 대위 등 33명]] || 1955년 8월 5일 UDT 1기생이 입교했고, 8월 8일 UDT 체조를 시작으로 훈련이 진행되었다. 해군의 최초 UDT 교육은 교육훈련에 필요한 각종 교재와 장비 등이 구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체력단련과 수영위주로 제2전단 예하 함정교육대(항무) 주관으로 시작되었다. 비록 훈련에 필요한 장비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지만 미 해군 UDT 교육과정과 유사한 내용으로 구성하여 체력, 지옥주 훈련(극기주), 구보, 수영, 잠수 등의 다양한 교육훈련을 13주간 실시하였고 특히 이때 실시한 잠수(Skin SCUBA) 교육은 국내 잠수 역사상 최초로 기록되어 한국 잠수 역사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매일 계속되는 강한 훈련에 생도들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미 해군 UDT 과정을 수료한 7명의 교관들은 UDT의 혼과 열정을 심어주기 위해 미 해군 UDT 과정보다 더 강한 훈련으로 생도들을 교육하였고, 1955년 11월 9일 마침내 병조장 이만수 등 26명은 대한민국 UDT 1기로 배출되었다. 1955년 11월 9일 UDT 1기 수료식과 더불어 장인표[* 해사 5기, 美 UDT 11기, 해군 대령 예편] 대위를 초대 지휘관으로, 교관 7명과 UDT 1기생 26명 등 총 33명으로 한국함대 제2전단 해안대 사령으로 대한민국 해군 역사상 유일무이한 특수전부대인 '''수중파괴대(UDT)가 창설'''되었다. 출처: [[http://www.imhc.mil.kr/user/indexSub.action?codyMenuSeq=70508&siteId=imhc&menuUIType=sub|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FB_IMG_1573490433099.jpg|width=100%]]}}} || || 1968년 UDT 14기 수료식 (해군, 육첩(HID), 해병대 등 120여명 입교, '''7명''' 수료)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img.bemil.chosun.com/20100109153521.jpg|width=100%]]}}} || || 1971년 UDT 17기 수료식 사진 || * 1955년 11월 9일 '''수중파괴대(UDT) 창설''' * 1968년 5월 1일 '''폭발물처리대(EOD) 창설''' * 1975년 '''UDT/SEAL로 명칭 변경''' * 1976년 1월 1일 '''특수전(SEAL) 임무 추가'''[* SEAL 임무는 미국의 UDT가 Navy SEAL로 바뀌었으므로 미군의 편제와 임무를 따라가는 한국군도 자연스럽게 UDT에게 보다 넓은 범위의 작계를 부여하게 된 것이다.] * 1983년 1월 1일 제2전단 예하 '''제25특수전전대 창설''' * 1986년 2월 1일 [[제5성분전단]] 예하 제56특수전전대로 개편 * 1993년 12월 1일 [[육군특수전사령부]] [[제707특수임무단|제707특수임무대대]]로부터 '''해상 대테러 임무 이관'''[* 처음부터 지상 임무에 특화된 육군 특전사 707특임대에게 해상대테러 임무를 부여했다는 사실이 넌센스다. 부대원 개개인의 해상작전 숙련도 차이는 물론이고 707특임대는 바다와 거리가 먼 내륙에 있어 해상훈련을 시행하기도 마땅치 않으며 해상대테러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자산 운용 또한 해군의 협조 없이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 1998년 4월 1일 '''특수선박대 창설''' * 1999년 5월 1일 육·해상 대테러 모두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특수임무대(CT) 창설'''[* 제1,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9872563|3]],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001&oid=056&aid=0010469093|5]]특전대대 모두 [[대테러부대#s-4.1|대테러특수임무대]] 임무를 맡고 있으나, 국가급 [[대테러부대#s-4.1|대테러특공대]] 임무는 특수임무대대에서 맡고 있다.] * 2000년 1월 1일 '''특수전여단 창설''' * 2007년 12월 21일 특전전대, [[해군 해난구조전대|구조전전대]](SSU), 기뢰전대를 예하부대로 '''특수전전단 창설''' * 2009년 1월 1일 특수전여단으로 개편[* 기뢰전대는 제5성분전단 소속으로 예속, 구조전전대는 해난구조대로 개편후 제5성분전단 제55군수지원전대 소속으로 예속되었다.] * 2012년 2월 1일 특수전전단으로 다시 개편[* 쉽게 설명하자면 2007년 UDT/SEAL + SSU + 기뢰전대 = 특수전전단 → 2009년 특수전여단(UDT/SEAL) → 2012년 특수전전단(UDT/SEAL). 2007년의 특수전전단이 UDT, SSU, 기뢰전대 등 여러부대 통합의 전단이었다면 2012년 탄생된 특수전전단은 UDT 독자 확대개편의 특수전전단이다.] * 2017년 2월 1일 폭발물처리대대 창설[* 제1특전대대 산하의 한 작전대로 있었던 폭발물처리대(EOD)를 독립대대로 확대개편시킨 폭발물처리대대가 창설되었다. 폭발물 처리 부대로서는 전군 최대 규모. [[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ntt_writ_date=20170203&parent_no=4&bbs_id=BBSMSTR_000000000005|#]]] * 2018년 9월 1일 [[해군 해난구조전대|해난구조전대]](SSU), 구조함 등 특수전전단에 예속 * 2020년 2월 1일 선견작전대대 창설[* 해군/해병대의 '상륙작전 능력 보강 계획'에 따라 초창기 수중파괴대(UDT)를 모체로 하는 선견작전대대가 창설되었다. [[https://kookbang.dema.mil.kr/newsWeb/20210719/2/BBSMSTR_000000010053/view.do|#]]] * 2023년 1월 1일 특수임무전대 창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